필자가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접한 것은 1996년의 일이다. 요즘과 달리 당시 동네마다 한 두 곳은 있었던 DP점을 운영하시던 지인이 '구경'시켜준 카메라는 기존에 보아온 것들과는 어딘가 달랐다. 플라스틱이었으며 1회용 같다는 것이 첫 느낌이자 디지털 카메라와의 첫 대면이었다. 민무늬막을 장착한 신형 FM2를 쓰고 있던 필자로서는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었기에 제조사나 모델명조차 기억 나지 않지만, 초창기 제품으로 유명한 'QV-10' 1이나 'Dycam model 1' 2은 분명히 아니었다. http://www.digicamhistory.com에서 검색해본 바로는 'CHINON ES-1000'이 색상이나 질감, 모양새 등에서 가장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. 피사체의 치부를 낱낱이 밝혀버릴 것만 같은 DSLR들의 근엄한 외양에 길들여진 현대인(?)의 눈에는 보잘 것 없지 않은가? 사진 산업을 덮어 오는 거대한 흐름을 눈여겨 보지 않았던 필자에게 그날의 사건은 앞날을 예견하는데 필요한 것은 초능력이 아니라 관심과 견문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.
아래는 96년 4월호 '과학동아'의 표지로서 제호 밑 왼쪽을 보면 디지털에 관한 특집 기사가 실린 것을 알 수 있다. 48쪽부터 67쪽에 걸쳐 다섯 가지 주제로 현재의 상황과 곧 다가올 변화를 이야기하였음을 볼 때, 디지털이 일반인들의 손에 잡히는 현실이 된 시점은 이 무렵이다. 기사 중 고무적인 한 가지는 삼성과 현대가 초창기부터 디지털 카메라를 제작, 발표하고 있었다는 점으로서, KENOX와 그 뒤를 잇는 VLUU 류의 국산이 카메라 사업에 대한 의지와 기술이 부족하여 개발이 더디고 성능이 쳐진다는 폄하 의식은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임을 알 수 있다. 현대는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예측하지 못한 듯 외환 위기 무렵 카메라 사업에서 철수했으나, 삼성은 815를 시작으로 렌즈 교환식 DSLR을 출시하는 등 현재까지 고군분투하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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